방태원(전 동대문구청장 권한대행)
사례 하나, 지난 3월 서울 화곡동 도로변에서 폐지수집으로 생계를 꾸리던 두 명의 할머니들이 폐지를 서로 가지려고 몸싸움을 하다 한 할머니가 차량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에는 65세 이상 홀몸노인이 21만 6천여 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 달 생활비가 최저생계비(50만 4천 원)에도 못 미치는 노인이 15만 명이 넘는 걸로 파악된다. 많은 노인이 국가의 소득보장을 받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수입 1만 원도 안 되는 폐지 수집에 나서고 있다.
사례 둘, 얼마 전 서울지역 국공립어린이집 대기자가 32만 4천여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강남구의 한 구립어린이집은 대기자가 무려 3,266명이나 되는데, 특히 0세아는 대기번호가 1,222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뒷번호 어린이들은 이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보육비가 싸고 교육여건이 조금 나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기 때문에 요즘 똑똑한 엄마들은 임신하자마자 구립어린이집 대기 등록부터 하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두 가지 사례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수도 서울의 복지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개선이 꼭 필요한 분야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새로운 사회적 화두에 빠르게 몰입하고 있다. 그동안 복지는 상당히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로 여겨져 왔지만, 짧은 시간 동안 정치와 언론을 통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두드러졌다. 무상급식으로부터 촉발된 ‘보편적 복지’에 관한 사회적 논쟁은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사퇴라는 전인미답의 결과로 이어졌으며, 목전에 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 및 대선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복지논쟁이 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 조금 더 한정해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제되지 못한 갑론을박은 공허한 결과만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작금의 복지논쟁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둘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또는 더 나은가라는 무모한 비교로 변해가고 있으며,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한쪽에 줄을 서도록 강요하는 상황이다. 보편적 복지란 소득수준과 직업 등 개인의 특성에 따라 복지급여와 서비스의 제공을 제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복지정책을 단순하게 보편적이냐 선별적이냐 양분하기 쉽지 않으며, 보편적 복지가 좋다 또는 나쁘다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앞서 제시한 두 개의 사례들을 굳이 구분하자면 빈곤노인을 위한 소득보장은 선별적 복지, 보육서비스는 보편적 복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자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가치 판단은 가능하지 않다.
특정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확보할 것인가는 그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와 수요, 전달가능성, 그리고 가용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가운데 결정되는 것이 기본이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고려사항은 ‘통합적 관점’이다. 노령연금이나 의료보험, 보육서비스 같이 보편성이 강한 정책이 있긴 하지만, 모든 복지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특정 복지정책의 보편성 수준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책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우선순위를 검토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복지현실을 고려할 때 무상급식이 보편적 복지의 대표성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현재 보편적 복지 논쟁에는 복지수요자, 즉 시민들의 간절함이 빠져있다. 정치전문가들이 제기하고 있는 복지정책들이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과 서민들의 욕구를 섬세하게 고려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실증적인 조사결과와 합리적 의사소통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기획된 결과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가 무상급식이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고 사회통합적인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우선으로 필요한 정책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의 덫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지예산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고, 기업과 지역사회의 역할도 커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복지 발전과 보편적 복지가 기계적으로 필요충분관계를 가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후발 복지국가로써 복지정책의 효과성 및 예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계별 발전전략이 상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정의로운 복지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분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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