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 영 조
최근 한 뉴스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여덟 달이나 내버려둔 사건이 보도되었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일은 이미 예고된 일일 것이다. 친구를 짓밟고서라도 학교에서 1등을 하고, 서울대에 입학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길을 최고로 치는 부모들이 있는 한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그야말로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이다. 운동을 해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하고, 음악을 해도 세계 최고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해야만 한다. 또 민요를 하면 무형문화재가 되어야지 그저 평범한 소리꾼은 안 된다. 정치를 하면 출마를 해야 하고 무조건 당선이 되고 봐야 한다. 2등을 해서도 안 되고 등외면 더더욱 안 된다. 그런데 어디 그 일등이란 것이 만만한 일이던가? 아니 2등이 없는 일등, 등외가 없는 일등이 있을 수 있을까?
예전 우리 마을마다 또랑광대가 있었다. 또랑광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판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또랑”이란 집 담벼락 옆을 흘러가는 작은 실개천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또랑광대는 또랑에서나 소리자랑을 하는 어쭙잖은 소리광대라는 뜻이다. 마을에서나 소리 좀 한다고 우쭐거린다며 비하하여 일컫던 말이었다. 그래서 광대보고 또랑광대나 되라고 한다면 큰 모욕일 것이다. 그런데 이 또랑광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편 없는 광대일 뿐일까? 진정 예전 사회에서 또랑광대란 무엇이었을까?
또랑광대의 뒤에 붙는 “광대(廣大)”는 사전적 의미로는 “넓고 땅처럼 크다.”란 뜻이다. 그렇게 본다면 “또랑광대”는 작은 또랑을 넓고 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단순히 그런 뜻만이 아니다. 실제 예전 또랑광대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 어떤 마당이나 사랑방 같은 삶의 곳곳을 지키며, 판을 살리던 감초 같은 존재였다. 소리꾼은 소리꾼이되 음악성에 파묻히지 않은 채 판이 요구하는 소리를 하던, 아주 중요한 광대였다. 늘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과 만드는 판이기에, 판에 보이는 이웃의 면면과 일상사를 훤히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편안함과 익숙함에서 오는 즉흥 사설, 판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놀이성,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덕담이나 재담, 그리고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풍자와 해학을 맘대로 구사하던 이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 또랑광대는 마을에서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존재다. 음악성뿐만 아니라 사회성, 더더구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다면 명창보다는 또랑광대가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물론 마을에 명창이 뜨면 사람들은 일시 명창에게로 눈을 돌린다. 마치 구의원이 있던 자리에 국회의원이 등장하면 구의원은 찬밥이 되고 모두가 국회의원을 모시기에 혈안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명창이 늘 그 마을에만 있어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명창이 그 마을을 떠나는 날 또랑광대는 마을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시 자리매김한다. 또랑광대는 늘 마을과 함께 있는 것이며, 마을은 늘 또랑광대의 소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또랑광대 가운데 뛰어난 이가 있으면 그가 바로 명창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천하게 여기는 수많은 또랑광대가 있어야만 명창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의 소리 인생 50해를 기리는 음악회에 간 적이 있다. 그분은 이 시대에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뛰어난 내공과 실력을 겸비하여 수많은 사람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인데도 자리가 모자라 아우성치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이 한둘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2시간 이상 되는 공연을 그 명인이 홀로 장식할 수는 없었다. 200여 명의 제자와 다른 분야의 명인 명창들이 함께했다. 그래야만 공연은 보기 좋게 청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끝낼 수 있다. 물론 제자들의 소리가 그 명인의 소리를 넘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의 설익은 소리들이 함께 했기에 명인은 더욱 명인답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일등을 좋아하는 세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현실적으로 일등이 되지 못한다. 자신이 그러면서도 무조건 일등을 좋아하고 자기 자식도 일등이 되기를 강요한다. 결국은 그런 강요가 칼날이 되어 자신을 겨냥하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수많은 2류, 3류 그리고 지방대학이 없으면 서울대학교도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서울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나라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일등이 아니라 열심히 한 꼴찌도 대접받는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또랑광대는 말해 주고 있다.
네이버 누리솔(nanurisol)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도랑물은 구불구불 서두를 것 없는 마을을 지나 흐르다가 빨래터 아낙들이 내려놓는 이야기 다 듣고, 첨벙거리며 노는 아이들과 함께 한나절 지낸 뒤, 여기저기 마을 논물 다 대고 나서 사람 사는 마을을 마저 품고 흐른다. 이 도랑물처럼 마을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풀고 감아 마당에 펼쳐놓는 또랑광대의 판소리는 걸지고 흥겹게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돋우며 흘러간다. 판을 읽어내고 판에서 뒹굴고 숨 쉬는 판소리는 바닥에 털썩 앉아 시시콜콜한 하소연 다 들어주고, 말을 건네고 받으면서 그 바닥의 이야기로 채워낸다. 거기에 또랑광대의 자리가 있다.” 자칭 또랑광대라 하는 김명자 명인에 대한 글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다행스럽게 우리나라 곳곳에는 자신을 또랑광대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의 또랑과 또랑광대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제발 사회여, 부모들이여 일등을 강요하지 마라.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 풀이 죽어서 돌아오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세계 수많은 선수 가운데 이등이 아닌가? 내 자식이 또랑광대가 되더라도 좋아서 하면 보람을 가지고 하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일등이 아니라 마라톤에서 완주한 꼴찌에게도 흔쾌히 크게 손뼉을 쳐주는 사람이 되자. 어쩌면 우리 모두 세상의 또랑광대인지도 모른다. 아니 모두 또랑광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수많은 제자 곧 또랑광대가 있을 때 명인은 빛나며, 또 그 또랑광대들이 명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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